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크리스티나 페르난데스 데 키르치네르 (문단 편집) == 초기 활동 == [[부에노스아이레스]]주의 [[라플라타]]에서 태어났다. 아르헨티나의 명문대학인 국립 라플라타 대학교에서 [[법학]]을 전공했으며, 학창 시절부터 [[후안 페론|페론주의]] 활동을 했다. 법대 재학 중 같은 학교 학생으로 역시 페론주의자인 네스토르 키르치네르를 만나 연애를 하고 1975년 결혼했다. 부부는 변호사로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활동할 계획을 가졌다. 그러나 1976년, 이사벨 페론이 축출되고 호르헤 비델라의 군부 독재가 시작되자, 남편의 고향인 남부 파타고니아 지방에 있는 산타크루스 주 리오가예고시로 이주하여, 이 곳에서 지역 변호사로 일했다. 이후 군사정권이 종식되자 남편과 같이 페론주의 계열의 정의당(=페론당) 소속으로 다시 정치를 시작했다. 1987년, 남편은 리오가예고스 시장에 당선되었다. 1989년, 정의당 소속의 카를로스 메넴이 당선되어 정의당이 여당이 되어 그들의 정치활동은 더욱 유리해졌다.[* 그래서 아르헨티나 좌파 일각에서 당시 네스토르 키르치네르와 크리스티나 페르난데스를 민영화를 추동하는 정치인으로 여기며 까기도 했다. 사실 1990년대 당시의 페론당은 메넴 대통령의 영향으로 신자유주의를 적극 추진하던 정당이었고, 네스토르와 크리스티나는 당시만 해도 속은 어떨지 몰라도 겉으론 메넴의 노선에 딱히 대항적인 정치인이 아니었기에 이상할 것도 없었다. 이들이 반신자유주의를 적극적으로 내세운건 아르헨티나 경제 위기가 온 메넴 말기 이후부터다.] 남편은 1991년에는 산타크루스 주지사에 당선되어 2003년 대통령이 될 때 까지 재직했다. 크리스티나 페르난데스는 주지사의 부인으로 남편을 내조했을 뿐 아니라, 그 자신도 여성 정치인으로 활동하여 1995년 산타크루스 주 연방 상원의원에 당선되었고, 여당 정의당의 유력 정치인으로 떠올랐다. 2001년에도 크리스티나 페르난데스는 상원의원에 당선되었고, 지방 주지사인 남편보다 전국적으로 더 알려진 정치인이 되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